책장에 있는 이 책을 보고 와이프는 정말 에세이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지난번에 읽은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어서 이번에도 와이프에게 물어보았다.
'이 책은 어때? 괜찮았어?'
'내가 산 책이 아닌 거 같은데?'
'어? 내가 에세이를 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잠깐 동안의 실랑이가 있은 다음 그게 뭔 대수냐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산 책이었다. 혹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으려나 하는 생각에 주문내역을 보니 몇 년 전에 구입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예전의 나는 에세이를 직접 가서 보지도 않고 샀던 적도 있구나 하는 다소 낯선 기분이 들었다.
저자 고수리. 처음에 이 이름이 필명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소 특이한 이름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의 이력 또한 흥미를 끈다. 바로 KBS의 인간극장이라는 아주 유명한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니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집필활동을 이어나갈 뿐만 아니라 문예창작학과 교수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티비를 따로 챙겨보진 않지만 예전에는 아침에 잠깐씩 인간극장을 보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슬픈 감정도 느꼈던 프로그램이다. 그런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했던 사람의 에세이라 그런지 괜히 읽기도 전에 재밌을 것 같았다. '뭐가 달라도 다르겄쥬~' 하는 한 회사의 광고처럼 말이다.
작가의 삶에 있어서 일어났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과하지 않은 담백한 문체로 쓰였는데 참 묘한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억지로 노력한듯한 느낌이 아닌 그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따뜻한 기분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일상에도 드라마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책의 문구처럼 정말이지 특별한 것 없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1화부터 50화까지 몰아보기 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도 드라마가 될 수 있구나,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사실이구나. 그중에서도 '프리뷰'라는 작업에 대해 얘기하면서 작가가 한 말이 정말 와닿았다. 참고로 프리뷰란 피디가 찍어온 영상을 글로 풀어서 문서화하는 일로,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이라고 한다.
아주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프리뷰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내가 우주의 티끌만큼 작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질 때, 매일 똑같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버거울 때,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고 자신이 너무도 못생겨 보일 때. 딱 20일만, 그런 우리의 일상을 프리뷰해 보는 건 어떨까.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결정적 1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했던 모든 프리뷰에는 결정적 1분이 있었다. 겨우 20일의 일상, 그 기록 속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일상이 중요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한두 시간 방송 분량의 삶을 살진 않지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엔딩 크레딧도 없이 삶은 계속되지만, 당장 내일은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해야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프리뷰 노트 같은 일상, 사랑스러운 1분은 그런 6,000분 안에 있다.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 항상 촉수가 예민한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촉수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대상을 항상 외부에서만 찾아왔었다. 내 인생에도 마음을 울리는 결정적 1분이 있을 텐데 말이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평범한 에세이가 아니라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철학책을 읽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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