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취미를 물어봄으로써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정도의 취미가 없어서 다독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대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숨결이 바람 될 때'라고 답을 한다.
이번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숨결이 바람 될 때'가 떠올랐다. 폴 칼라니티라는 이름의 젊고 유망한 의사가 이른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 서른여섯의 나이에 삶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순간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응시하는 젊은 의사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짐과 동시에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아주 인상 깊었던 책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인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도 폴 칼라니티와 비슷한 면이 많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임원으로 지명된 아주 유능하고 미래가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듯의 '나티코'라는 법명을 받고 스님의 되어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17년간 수행에 매진하였다. 기나긴 수행 후 환속(출가한 스님이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한 후 본인의 깨달음을 알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18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는 루게릭병을 진단받게 되었는데 신체 기능이 계속해서 저하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강연을 이어나가다 2022년 1월 숨을 거두게 된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 마음에 평온을 주는 조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쓴 책을 참 감명 깊게 읽었는데 이후 그 스님의 삶의 배경이나 실제 삶의 모습이 알려진 이후로는 더 이상 가르침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책을 고를 때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인하게 되었는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가르침 모두가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을 한다.
메세지의 힘은 때때로 내용보다도 누구에게서 나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함께 있을 때면 나 역시 마음이 곧아지는,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이야기의 힘은 특히 막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야기의 출처를 향한 신뢰 덕분에 단순한 이야기로도 마음 한가운데를 꿰뚫을 수 있지요. 아잔 파사노 스님은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아잔 파사노'라는 이름의 스님을 매우 존경하기 때문에 그분이 하는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저자가 아잔 파사노 스님의 말씀을 들을 때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느꼈다.
일반인의 삶을 살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17년간 파란 눈의 스님으로 수행을 했기 때문에 책 내용 전반에 불교의 철학이 담겨있다. 평소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신앙이나 미신을 거의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 비해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이유는 남에게 불교를 믿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러한 불교의 분위기가 녹아있는 것 같다. 일단 17년간 수행을 통해 모든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또한 수많은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가르침 모두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사실 이 책을 처음 고르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장점이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다는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냉정하게 보았을 때 나의 최대 단점은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즉 본인이 틀린 것을 인정할 줄 알고 자기의 생각이 보편적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왜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이 드는지 참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런 나의 단점을 고치고 좀 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제목은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는 제목이었다.
아잔 자야사로 스님은 유창한 태국어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린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중략)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주문은 제가 가장 필요할 때 퍼뜩 떠올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떠올리면 언제나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지요. 더 겸손하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합니다. 이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며, 특정한 종교에 한정되지도 않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어렵지만 진심으로 본인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자세처럼 확실한 지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마치 인생의 교훈을 깨달은 것 마냥 블로그에 글을 적고 있지만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안다. 하지만 어렵다고 손을 놔버릴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특히 와이프), 저 주문을 외울 수 있도록 계속해서 스스로는 채찍질해야겠다.
죽음을 맞이하는 초연한 자세, 수많은 불교의 가르침, 특히 본인이 틀릴 수 있다는 주문까지 읽는 동안 가슴에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죽음을 앞둔 의사의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는 책이었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와 가르침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느낀 점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더불어 부부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걸 보고 제목이 너무 찰떡같아서 그런지 웃던 와이프가 생각난다. 와이프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야겠다. 앞으로 다투게 될 거 같으면 주문을 외워야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수요일에는 와이프가 잘못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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