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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취미/독서 기록

[독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by 김억지 2024. 3. 12.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 취미만큼 좋은 주제는 없다. 자연스럽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취미를 자주 물어보면서 정작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 취미라고 말할 정도로 많이 읽지 않는다. 축구? 이것도 뭔가 모자란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당당하게 말한다. 취미요? 달리기입니다.

 

 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는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하루에 10km를 달리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나 주말에는 20km를 달릴 때도 있다. 처음에는 건강을 목적으로 의무적인 마음으로 달렸지만 지금은 그저 달리는 것이 즐겁다.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날에는 빨리 퇴근하고 달리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달리기를 꾸준히 함으로써 달라진 긍정적인 변화는 수도 없이 많다. 일단 체중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할 때 몸이 매우 가볍다. 입맛도 좋아져서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수면의 질 또한 좋아졌다. 이런 신체적 변화 외에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지금은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진작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달리기 예찬론은 끝이 없을 듯 하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일단 제목이 관심을 끌어당긴다. 요즘 가장 재미가 있는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니 관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상당히 익숙하다. 아니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 전부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몇 개의 작품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가 쓴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라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유명한 소설가가 이런 책을 낸 사실 자체가 흥미로워 빨리 책을 읽고 싶어서 너무 기대가 됐다. 역시 지금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내용이라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다.

 

 각종 스포츠 중계나 기사를 보면 특정 스포츠를 승부나 대결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스포츠가 자신과의 싸움일 수 있지만 이 표현은 다른 그 어느 종목보다도 달리기라는 종목에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달리기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적인 요소보다도 스스로 정한 목표를 조금씩 달성하면서 '어제까지의 자신'과 경쟁한다는 점이다. 작가 또한 이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보면 알게 되지만, 레이스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기든 지든 그런 것은 러너에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우승을 목표로 뛰는 일류 선수라면 눈앞의 라이벌을 이기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겠지만, 일반의 러너에게 개인적인 승패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저 녀석한테 지고 싶지 않다'는 동기를 갖고 달리는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고, 그것은 나름대로 연습할 때 자극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특정한 라이벌이 어떤 사정으로든 그 레이스에 참가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레이스의 동기가 소멸(혹은 반감)해버리게 되면 러너로서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달리기의 매력은 어떤 스포츠보다도 연습에 따른 결과가 정직하다는 것이다. 상대방과 겨루는 스포츠에서는 세계랭킹 1위의 선수라도 하위 랭커의 선수에게 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인터뷰나 기사에는 각종 변명이 담겨있다. 상대방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등의 그럴듯한 내용으로 스스로의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선수를 자주 봤다. 그러나 달리기에 있어서 그런 변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그것이 전부였다. 연습량의 절대 부족에다, 체중도 줄이지 못했다. 42킬로 정도는 적당히 연습하면 어떻게든 달릴 수 있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겼던 것이리라.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박혔다. 비단 달리기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철학적인 교훈이라 생각한다. 달리기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행위라고 믿는다.

 

 달리기라는 행위에 대한 생각과 관점들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한편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거장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달리기를 잘 즐기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까지 한다. 달리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 스스로 성찰하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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