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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취미/독서 기록

[독서] 본투런(BORN TO RUN) - 크리스토퍼 맥두걸

by 김억지 2024. 3. 14.

 

 책의 뒤표지를 보면 미국의 스포츠 전문 미디어 업체인 ESPN의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있다.

 

"달리기를 주제로 이보다 더 멋진 책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나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흔히 흥미롭게 읽었거나 본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인생책'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이 나의 인생책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굳이 특정한 책 하나만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누군가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번에 읽은 '본 투 런'이라는 책이라고 답할 수 있다.

 

 'BORN TO RUN'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책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이라는 사람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AP통신 종군 기자로 여러 전장을 누린 이력이 있다. 그는 각종 잡지에 달리기에 관한 칼럼을 기재할 정도로 '러닝'에 진심인 사람이다. 그런데 여느 러너와 마찬가지로 각종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왜 달리기만 하면 다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던 중 우연히 멕시코 지역에 살고 있는 '타라우마라족'이 해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타라우마라족은 '라라무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장거리 달리기 능력으로 유명한 원주민족이다. 장거리 달리기라고 해서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밤새도록 파티를 즐기고 난 뒤 이틀 내내 달리는가 하면 어떤 타라우마라인은 한 번에 700km를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협곡의 울퉁불퉁한 트레일을 달린다.

 

 타라우마라족은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건강할 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 또한 완벽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타라우마라 족의 땅에는 범죄도 전쟁도 도둑도 없다고 한다. 부패, 비만, 약물 중독, 탐욕,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심장병, 고혈압, 매연도 없다. 이들은 당뇨병이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며 심지어 늙지도 않는다. 오십 대도 십 대보다 빨리 뛸 수 있고 여든 살 노인이 산중턱에서 마라톤 거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암 발생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부상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족저근막염, 장경인대증후군, 발목염좌, 신스프린트 등 부상은 달리기와 세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부상을 가져오는 것이 달리기다. 그런데 타라우마라족은 어떻게 부상도 없이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를 달리는 것일까? 인체공학 연구를 통한 최첨단 러닝화를 신는 일반 시민 러너들은 부상을 달고 사는데 심지어 그들보다 긴 거리를 달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어떻게 다리가 멀쩡하단 말인가? 나는 궁금했다. 통계를 잘못 낸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에 가까운 운동화를 신고 맞춤 보조기를 넣은 우리가 부상 확률이 제로이고, 신발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을 신고 돌투성이 땅을 훨씬 더 많이 달리는 타라우마라 족이 수시로 쓰러져야 맞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 타라우마라족에 대한 취재 기록이 책에 상세하게 나온다. 내용 자체도 매우 흥미롭지만 글을 워낙 재밌고 생동감 넘치게 적어서 마치 내가 현장에서 그 취재를 동행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취재를 하는 중 카바요 블랑코라는 의문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과거 타라우마라족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리드빌 100'이라는 100마일(160km)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 대회에 타라우마라족을 출전시킨 것인데 그 대회에서 타라우마라족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느끼고 대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타라우마라족이 대회에서 사라진 후 스포츠 과학의 성장에 힘입어 '리드빌 100'의 대회 기록은 점점 단축되어 2005년 타라우마라족의 기록보다 거의 2시간을 단축하기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카바요 블랑코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지만! 타라우마라족이 훈련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카바요가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빅토리아노 후안은 자신들이 배운 대로 사냥꾼처럼 달렸다. 목표물을 잡을 정도로만 달렸을 뿐 그 이상 빨리 달리지는 않았다. 카펜터와 달렸다면 얼마나 더 빨리 달렸을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그들이 고향 땅에서 어떻게 달리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타이틀을 방어하는 챔피언으로서 그들은 적어도 한 번은 홈그라운드에서 달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엘리트 주자들을 모집하는데 예상하지도 않은 인물이 등장한다. 세계적인 울트라 마라톤의 전설인 '스콧 주렉'이라는 선수가 카바요의 답장에 응한 것이다. 타고난 장거리 달리기 능력을 가진 타라우마라족과 스콧 주렉을 비롯한 엘리트 주자들의 대결 과정을 보는 것은 정말 박진감 넘쳤다. 당장 신발끈을 묶고 나가서 뛰고 싶을 정도로 가슴을 뛰게 했다. 

 

 위대한 경주의 승자를 확인하는 과정도 재밌었지만 이 책은 달리기라는 행위에 대한 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을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이 다시 느껴졌다. 인류 역사에 있어 달리기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단순 취미나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라 왜 우리가 달리기를 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책을 읽을 당시의 그 감정이 새롭게 떠오른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은 나에게 가져다준 기분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 위대한 경주의 승자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꼭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분명히 가슴을 울리게 하는 무언가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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