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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취미/독서 기록

[독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이나다 도요시

by 김억지 2024. 5. 30.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보거나 특정 장면 혹은 회차 전체를 보지 않는 현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의 습관 정도로만 생각했을 행태에 대하여 그 이면에 감춰진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사회적 트렌드의 변화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책을 읽기 전에도 몇 가지 원인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일단 과거에 비해 현재 생산되는 콘텐츠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 싶고, 봐야 하는 콘텐츠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빨리 감기나 건너뛰면서 보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기 있는 콘텐츠의 시청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 유지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이다 보니 작품 전체를 시청하지는 못하더라도 빨리 감기로 시청하거나 요약본 시청을 통해 타인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원인도 있다. 

 

 이러한 외적인 요인들은 분명한 원인이 되지만 이것 만으로는 현상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내적 요인이 있지만 그중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읽을 책을 고를 때도 적용이 되는데, 서점에 가서 책을 미리 읽어 보고 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책 전부를 읽어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속에서는 '막상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시간과 돈을 투자했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실패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 100%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 책을 구입했을 때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구입을 결정하는 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행태가 각종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를 통해 작품을 보다가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즉시 시청을 종료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거나, 혹은 유튜브의 요약본 영상을 통해 미리 내용을 파악하고 계속해서 이 작품을 볼지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내면적 원인에 대한 분석은 책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빨리 감기'의 행태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하여 사회 전반의 트렌드 분석으로 나아가는 흐름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졌던 내용에 대해서도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저 글쓴이의 분석력에 감탄하게 될 뿐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을 때 비판적인 의견이 대두되는 것은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이 있듯이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미디어나 디지털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지식인들이 불쾌감을 표현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지금은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도 등장했을 당시에는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고도 몇 년 동안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들의 태도로 여겨졌다. 일본 최초의 TV 방송이 시작되고 4년 후인 1957년, 당시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평론가인 오야 소이치는 책과는 달리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TV는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저하시켜 '바보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 '총인구 백치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중략)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방법이란 출현 후 얼마간은 비바람을 맞기 마련이다. 지금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라는 새로운 방법은 제작자로부터 쉬이 환영받지 못한다. 기존의 지식인들로부터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를 통해 콘텐츠를 시청하는 행태가 잠깐 동안의 비난을 받은 후 대중화되어 가장 일반적인 행태가 될지 궁금하다. 여전히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미래에는 이런 생각조차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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