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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취미/독서 기록

[독서]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by 김억지 2024. 4. 9.

 

 소설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여행 중 맛집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결코 '아무 데나' 들어가서 끼니를 해결하지 않고 맛집을 찾아다닌다. 사람들의 후기와 사진을 보고 신중하게 식당을 고르고 2시간 이상의 웨이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갔더니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입맛이 대중적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이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나에게 마치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검증된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에서도 다들 재밌다고 추천해주는 소설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맛집'이라는 생각에 내용을 읽지도 않고 바로 구입하였다.

 

 소설의 장르는 SF소설로 22세기가 배경이 된다. 21세기 중반 '더스트폴'이라는 재난으로 인하여 인류는 멸망 위기를 겪는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지만 살아남은 인류는 돔을 구축하여 그 안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돔 속에서 인간들은 서로 간의 다툼으로 인하여 돔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돔 안에서 삶을 이어나가던 중 과학의 발전으로 대기 중의 먼지 농도를 낮출 수 있게 됨에 따라 인류는 다시 예전의 삶을 되찾게 된다.

 

 과학의 힘으로 재난을 극복한 후 더스트 시대의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한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 근무 중이던 아영에게 한 가지의 일이 생기게 된다. 해월이라는 도시에 '모스바나'라고 불리는 덩굴식물이 이상 증식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 식물에 대한 분석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분석 결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도시 전체를 뒤덮을 듯이 증식하는 이 덩굴식물은 아영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모스바나의 이상 증식 원인에 대해 연구하면서 소설은 더스트 시대에 생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인류를 먼지에 노출되면 죽게 되었지만 이에 대한 내성을 가진 '내성종'도 존재하였다. 내성종은 살아남은 인류에게 각종 실험 대상이 되었고 '아마라'와 '나오미'라는 자매 또한 내성종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돔이 아닌 외부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게 된다.

 

 전혀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더스트 시대를 살아가는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의 이야기와 해월의 모스바나 이상 증식 현상을 연구하는 아영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는 시점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연구원의 끈질긴 연구로 인하여 인류가 겪은 재난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가 밝혀지게 될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분출되는 기분이었다.

 

 소설의 몰입감이 엄청났다. 소설에서 얘기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으며 마치 재난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심각한 마음으로 읽을 때도 있었다. 또한 소설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듯한 내용도 많았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있었다.

 

 SF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식물'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참신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책의 끝부분 작가의 말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데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야기의 출발점을 이런 방법으로 찾기도 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처음 '지구 끝의 온실'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는 막연한 이야기의 씨앗만이 있었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이 씨앗을 소설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주 느리지만 끈질기게 퍼져나가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결국은 지구를 뒤덮어버릴 생물체가 필요했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버섯, 심지어 곤충까지 진지하게 검토해봤지만 구상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탈락하고 내가 도달한 답은 하나, 식물. 오직 식물만이 내 소설을 구원해줄 생물이라는 거였다.

 

 독자마다 느낀점이 많이 다를 것 같은 소설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 소설을 추천할 수 있겠지만 그냥 이 소설은 재밌고 흡입력이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이 드라마화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가상캐스팅을 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각각의 등장인물에게 내가 또다른 생명을 불어넣는 기분이라 독서라는 행위가 특별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드라마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상으로 만나는 소설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개인적인 가상캐스팅은 '아영' 역에는 배우 박은빈, '나오미' 역에는 배우 김태리 님인데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하면 괜히 즐거운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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