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대화를 하면 내게 질문하는 것이 있다. '왜 여자는 이럴까?', '왜 남자는 이럴까?'는 식의 질문인데 똑같은 사람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다른 이유를 자주 질문한다. 물론 내가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맞을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인간이 처음 출현한 이후부터 진화를 해오면서 어떠한 특성만이 남아져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지 고민을 한다. 즉 지금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은 여자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특성이었을 것이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요한 특성을 가진 경우에만 본인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 보니 점차 이러한 생각이 점차 확장되었는데 이제는 습관적으로 인간의 특성들을 진화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읽은 '클루지'라는 책에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관점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책 말미에 '옮긴이의 말'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진화심리학이란, 진화생물학이 유기체의 신체적 또는 생리적 특성들을 적응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들의 기억, 지각, 언어와 같은 정신적 또는 심리적 특성들을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설명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에서 자주 발견되는 한 특징은 인간 마음의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뇌가 진화했을 당시의 환경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환경이 매우 다르다는 주장이다. 인류는 약 150~250만 년 전에 출현했는데, 인류가 생존했던 대부분의 시기는 약 18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 지속된 홍적세에 해당된다. 때문에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뇌 대부분은 홍적세 환경에 적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진화심리학의 예시로 거미와 뱀, 그리고 자동차를 언급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거미와 뱀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러면 생명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거미와 뱀이 아니라 자동차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인간은 거미와 뱀보다 자동차를 더 무서워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이나 거미를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에 대한 설명에 나와있듯이 인류는 약 180만년 전부터 생존해 왔는데 그 오랜 기간 중에서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 기간은 극히 일부에 지나치지 않는다. 즉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 자동차보다는 거미와 뱀이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거미와 뱀이 목숨을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거미와 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인류는 목숨을 보존하지 못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우리 인간들에게 남아있는 각종 특성들에 대하여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이유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상당히 타당한 학문이며 논리적으로 훌륭한 주장이라 생각을 한다. 우리의 신체와 마음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것인데 선조들은 자율주행하는 자동차를 타고 원격 화상회의가 가능한 시기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물려받은 수많은 특성들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적합하기보다는 원시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특성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는 수많은 '클루지'가 생겼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먼저 '클루지'라는 단어에 대해서 책을 읽기 전에 클루지라는 단어를 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책에서 클루지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대중화된 논문에서는 클루지를 '잘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조화롭지 않게 모여 비참한 전체를 이룬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바로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최적화되지도 않았고 여러 가지 결함이 있지만 그럴듯하게 작동하는 장치'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인류가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의 마음에도 클루지가 생겼다고 한다. 만약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면은 이러한 클루지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진화의 과정에서 항상 최적의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진화를 기존의 상태를 근거로 해서 점진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곧바로 최적의 상태로 진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에서 척추는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하나의 척추가 전체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므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게 된다. 물론 직립 보행을 하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 허리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만약 진화가 항상 최적화된 방향으로(일종의 창조론이지 않을까?) 이루어진다면 직립 보행을 하게 되었을 때 하나의 척추가 몸무게 전체를 지탱하도록 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진화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구조가 네 발 동물의 척추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진화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전의 상태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진화가 1~10단계의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최적화된다고 했을 때 만약 7단계 정도의 진화 상태가 삶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면 거기에서 진화를 멈추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진화의 결과는 완벽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 수많은 클루지를 만들게 되었다.
책에서는 신체적 클루지에 대해서는 예시로 잠깐 언급하는 정도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 마음속의 클루지에 대해서 포커싱을 하고 있다. 주변을 보면 스스로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항상 합리적은 선택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게 봤을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수많은 클루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인생 그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삶의 가치나 그 결과 또한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로 좌지우지되는데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클루지들은 계속해서 훼방을 놓는다. 인생의 방해꾼인 클루지들은 없앨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진화의 결과로써 축적된 이런 클루지를 한 순간에 지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스로에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마음속의 클루지를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수많은 클루지가 있고 그것이 생겨난 이유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B와 D 사이의 C는 훨씬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제안'도 있다. 물론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지만 이러한 조언보다는 우리 마음속에 수많은 클루지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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