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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취미/독서 기록

[독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by 김억지 2024. 5. 14.

 

 국내 소설 시장에 대해 큰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 최은영 소설가가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우연히 '쇼코의 미소'라는 작품을 읽고 그녀가 다른 소설들과는 차별화되는 고유의 문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각자가 가지는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되는 기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쇼코의 미소'에 이어 '밝은 밤'이라는 작품도 정말 재밌게 읽었던 터라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작품도 구입하게 되었다. 여러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인데 전반적인 느낌은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와 유사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등장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최은영 소설가의 팬이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머쓱하긴 하지만 이런 문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서점의 소설 코너에서 신작들을 보면 이게 소설인지 글짓기 대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듯한 글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속의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은 담백하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짓기 솜씨를 뽐내기 위함인지 글이 너무 장황하고 읽는데 피로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국내 소설 외에도 외국 소설, 특히 일본 소설을 읽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많은데 너무 자세한 상황 묘사가 나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최은영 소설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내가 그 작품 속에 들어가 몇 발자국 떨어져 등장인물을 관찰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결코 인물들의 감정이 파악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감정에 이입되고 함께 슬퍼한다.

 

 그래서 최은영 소설가의 작품은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이번에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책에 속한 여러 편의 소설도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의 결핍과 상처에 공감할 수 있었다. 각 작품의 배경 또한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더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부담감 없이 작품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각 작품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는데 그 문제들을 의도를 가지고 전면에 내세웠다기보다는 읽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은연중에 나타내도 있다.

 

 간혹 독자에게 교훈을 주거나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위하여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특정 주제를 강요하는 작품이 있다. 문학 작품이 순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과도하면 문학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느낀다.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부담감 없이 글로 표현하는 것이 소설가의 능력이라고 생각되며 그러한 점에서 최은영 소설가는 뛰어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작품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던 점은 등장인물들이 선역과 악역으로 구분된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이 성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남성 등장인물이 대체적으로 갈등의 원인 내지는 문제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는데, 물론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작품 속 배경에서는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의 성별이 남성이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은 작품에서도 여성이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요즘 여성의 인권이 주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 있고 정의로운 행위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다소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고 특히 최은영 소설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라도 그녀의 소설을 찾아서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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